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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재정의 가이드 (기대, 공정성, 합의)

by USEFREE 2026.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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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중 넘어오는 업무를 잘 분배하는 방법 이미지

이 글은 “이 정도는 해줘야지”라는 기대가 반복되면서 관계나 팀이 서서히 마르는 순간을 겪는 분들을 위해 작성했습니다. 누군가의 호의가 관성처럼 굴러가면, 어느 날부터는 고마움이 사라지고 ‘기본 서비스’만 남는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공정성을 “똑같이 나누기”가 아니라 “서로 예측 가능하게,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조정하기”로 다시 정의해 보자고 제안드립니다. 독자가 말다툼을 피하면서도 경계를 세우고, 결국엔 합의라는 형태로 관계의 숨통을 틔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오늘부터는 마음의 불만이 터지기 전에, 기준을 먼저 세우는 대화를 시작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기대가 ‘자동이체’가 되는 순간을 포착하기 (기대)

기대는 처음부터 폭탄처럼 나타나지 않습니다. 보통은 작은 부탁 하나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부탁이 반복되면, 어느 날부터 그 일은 ‘요청’이 아니라 ‘전제’가 됩니다. 마치 자동이체처럼요. 한 번 설정해 두면 매달 빠져나가는데, 정작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느낌은 마지막 잔액이 바닥날 때쯤 선명해집니다. 기대도 그렇습니다. “이번만요”가 “원래 그쪽이 하던 거잖아요”로 바뀌는 순간, 관계는 조용히 기울기 시작합니다. 저는 예전에 팀에서 자료 정리를 자주 맡았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정리하는 속도가 빨라서, 회의 후에 “정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부탁을 두어 번 받았지요. 그때는 ‘내가 조금 더 하면 팀이 편해지겠지’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문제는 세 번째, 네 번째부터였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회의록은 늘 그분이 올려주시니까 기다리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더군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묘하게 속이 서늘했습니다. 부탁이 아니라 ‘기대의 기본값’이 되어버린 겁니다. 스스로 만든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돌이키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대가 자동이체로 굳는 데에는 흔한 신호가 있습니다. 첫째, 감사가 줄어듭니다. “고맙습니다”가 “올려주세요”로 바뀌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릅니다. 둘째, 불참이나 거절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예전엔 “오늘은 어려워요” 한마디면 됐는데, 나중엔 “왜요?”가 붙습니다. 셋째, 나의 업무나 사정은 배경으로 밀립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원하는 결과’이지, 그 결과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때 많은 분들이 마음속으로만 계산합니다. ‘지난번에도 내가 했지’ ‘이번에도 내가 하네’ 같은 숫자들이 머릿속에서 쌓여갑니다. 하지만 계산은 기록이 아니어서, 피곤한 날에는 더 크게 느껴지고 여유로운 날에는 덜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기대가 쌓인 것 같으면, 감정의 크기부터 믿기보다 “무엇이 언제부터 내 몫이 되었는지”를 먼저 적어보시길 권합니다. 요청으로 시작한 일이 관행이 된 항목, 내가 거절하기 애매해서 그냥 넘긴 항목, 내 시간이 ‘남는 시간’으로 취급된 항목을 구분하면 구조가 보입니다. 구조가 보여야 대화가 됩니다. 기대의 문제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설정값이 바뀐 문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공정성은 ‘같이’가 아니라 ‘납득’에서 출발합니다 (공정성)

공정성이라는 단어는 이상하게도 모두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각자 다른 그림을 떠올립니다. 어떤 분은 공정을 “똑같이 분배”로 이해하고, 또 어떤 분은 “기여에 맞춘 배분”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기대가 쌓인 관계에서는 이 차이가 더 크게 드러납니다. 한쪽은 “나도 힘든데 왜 나만 더 하지?”라고 말하고, 다른 쪽은 “당연히 네가 잘하니까 네가 하는 게 효율적이지”라고 말합니다. 둘 다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기준이 다를 뿐이지요. 저는 공정성을 다시 세울 때 ‘저울’보다 ‘영수증’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울은 무게를 똑같이 맞추는 상상으로 우리를 끌고 가지만, 영수증은 “무엇을 샀고, 얼마를 냈고,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제공한 것(시간, 대응, 감정 관리, 책임)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얻은 것(인정, 권한, 선택권, 휴식, 보상)이 무엇인지가 납득 가능하게 연결되어야 공정하다고 느낍니다. 프로젝트 막바지에 고객 요청이 자주 바뀌면서, 수정 대응을 거의 제가 맡게 된 적이 있습니다. 팀장은 “그건 어차피 너랑 커뮤니케이션이 제일 잘 되니까”라고 말했고, 팀원들은 “고객이 너를 제일 믿는다”는 말로 저를 달랬습니다. 듣기에는 칭찬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문장은 족쇄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매번 야근을 했고, 다음 날 회의에서는 피곤한 표정 때문에 오히려 ‘컨디션 관리’ 지적까지 받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공정이 무너진 이유는 ‘업무량’ 자체보다, 그 업무를 맡는 대가가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이후에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업무량을 소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공정성을 재정의할 때는 “무엇을 공정의 단위로 볼 것인가”부터 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업무 시간이 단위인지, 책임 범위가 단위인지, 혹은 긴급 대응처럼 예측 불가능한 부담이 단위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단위를 정했다면, 그 단위에 맞게 조정 장치를 붙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긴급 대응을 맡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다음 날 오전을 보호해 준다든지, 다른 업무 우선순위를 조정한다든지, 혹은 일정 기간마다 순번을 바꾸는 식의 장치가 필요합니다. 공정은 마음씨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장치로 유지됩니다. 대화는 이렇게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일을 못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 일이 제 역할에 고정되는 순간 다른 일정이 계속 밀립니다. 그래서 기준을 정해두면 좋겠습니다.”라고요. 공격도 아니고 변명도 아닙니다. 공정성을 ‘감정의 호소’가 아니라 ‘운영의 설계’로 옮기는 문장입니다. 기준을 정하면, ‘누가 착한 사람인가’ 싸움이 줄고 ‘어떤 방식이 지속 가능한가’ 논의가 시작됩니다.

합의는 말로 끝내지 말고 ‘형태’로 남기셔야 합니다 (합의)

기대가 쌓인 상태에서 대화를 꺼내면, 상대도 방어적으로 반응하기 쉽습니다. “그럼 이제 안 하겠다는 거야?” “왜 이제 와서?” 같은 말이 나오면, 이야기의 방향이 금세 감정으로 흐릅니다. 그래서 합의는 설득이 아니라 ‘정렬’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서로 다른 기준을 같은 선 위에 올려놓는 작업이지요. 저는 이럴 때 세 단계로 정리해 대화를 진행합니다. 첫째, 사실을 짧게 말합니다. 둘째, 내가 원하는 기준을 제안합니다. 셋째, 선택지를 열어둔 채로 다음 행동을 확정합니다. 이 순서가 의외로 관계를 덜 흔듭니다. 저는 회의록 건으로 결국 팀원 한 분과 정면 대화를 하게 됐습니다. 그때 제가 쓴 첫 문장은 이랬습니다. “최근 4번 회의 중 3번을 제가 정리했고, 그 때문에 오후 일정이 자주 밀렸습니다.” 감정을 덧붙이지 않고, 사실만 말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회의록을 고정 담당으로 두기보다는, 회의 주최자가 1차 정리를 하고 필요한 부분을 제가 보완하는 방식이 어떨까요?”라고 기준을 제안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주는 그렇게 한 번 운영해 보고, 다음 회의에서 10분만 점검하자”라고 다음 행동을 박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상대는 바로 수긍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되죠. 그냥 늘 하시길래….”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기대가 악의가 아니라 습관에서 왔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상대는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고 정확한 업무 분장으로 여유를 찾게 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합의를 ‘문장’으로 남기는 일입니다. 거창한 문서가 아니어도 됩니다. 메신저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회의록은 주최자가 초안을 올리고, 저는 보완만 합니다. 긴급 수정 요청은 ‘긴급’ 표시 후 우선순위 재조정 요청 가능.”처럼요. 이렇게 남겨두면, 다음에 기대가 다시 자동이체처럼 작동하려 할 때 “우리 지난번에 이렇게 하기로 했지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억은 흐려지지만, 문장은 남습니다.
또 하나, 합의는 한 번에 완벽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2주 뒤에 다시 조정하자”는 문장이 합의를 살립니다. 실행해 보면 예상치 못한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때 ‘조정할 권리’가 열려 있어야 서로 덜 억울합니다. 기대가 쌓이지 않게 하는 힘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이런 작은 점검 루틴에서 나옵니다. 합의를 형태로 남기면, 관계는 더 이상 눈치로 굴러가지 않고 규칙으로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이 정도는 해줘야지”라는 말이 무서운 이유는, 그 안에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준이 없으면 사람은 감정으로 버티고, 감정은 언젠가 바닥이 납니다. 반대로 기준이 생기면 같은 상황도 훨씬 가볍게 처리됩니다. 기대가 자동이체로 빠져나가고 있다면, 지금이 설정을 바꿀 때입니다. 오늘 당장 하나만 골라보세요. 가장 자주 떠넘겨지는 일, 가장 거절하기 애매한 일, 혹은 가장 피로를 남기는 일. 그리고 사실을 말하고, 기준을 제안하고, 선택지를 열어둔 채 다음 행동을 확정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 작은 합의 하나가 쌓이면, 공정성은 구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관계의 운영 방식’이 되어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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