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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미달 낙인 끊기 (경계, 대화, 성장)

by USEFREE 2025.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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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기대를 이끌어내는 이미지

이 글은 “기대에 못 미치는 자녀”라는 꼬리표 때문에 마음 한쪽이 늘 움츠러드는 분들을 위해 작성했습니다. 목표는 단순히 부모를 설득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평가의 시선이 내 안으로 들어와 굳어진 순간을 되짚고, 그 시선을 조용히 밖으로 밀어내며 ‘나와의 관계’를 다시 세우는 데 있습니다. 경계는 차가운 벽이 아니라 숨 쉴 틈이고, 대화는 승부가 아니라 방식의 전환이며, 성장은 거창한 결심보다 작은 반복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이 글을 통해 독자님이 스스로를 설명하느라 소진하기보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언어를 하나씩 회수해 가실 수 있길 바랍니다.

경계: 내 마음의 출입문에 잠금장치 달기

꼬리표는 대개 말 한마디로 끝나지 않습니다. “너는 왜 늘…” 같은 문장이 습관처럼 쌓이면서, 어느 날부터는 그 문장이 내 일기장까지 따라 들어옵니다. 그래서 경계는 ‘상대에게 화를 내는 기술’이 아니라, 내 마음의 출입문에 잠금장치를 다는 일에 가깝습니다. 누구든 들어올 수 있던 공간에 “이 방식으로는 못 들어옵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이는 것이지요. 제가 경계를 처음 실감한 건 아주 사소한 순간이었습니다. 몇 년 전, 저녁에 부모님과 통화하다가 진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평소처럼 “그렇게 해서 뭐가 되니?”라는 말이 나왔고, 저는 반사적으로 웃으며 “그냥 해보는 거예요”라고 넘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목이 턱 막히더군요. 전화를 끊고 나서도 가슴이 쿵쿵 뛰고, 마치 누군가 제 등을 손가락으로 계속 누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넘기는 게 성숙함이 아니라, 나를 방치하는 방식일 수도 있겠구나.’ 경계는 크게 두 겹으로 만들면 좋습니다. 첫째는 ‘대화 주제의 경계’입니다. 예를 들어 성적, 취업, 결혼처럼 평가로 곧장 이어지는 주제는 “그 이야기는 지금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표현 방식의 경계’입니다. 같은 조언이라도 비난의 옷을 입으면 상처가 됩니다. “한심하다, 답답하다” 같은 단어가 나오면 저는 이제 이렇게 말합니다. “그 단어가 나오면 저는 대화를 멈추겠습니다.”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짧게, 그러나 반복합니다. 경계는 한 번의 멋진 문장으로 완성되지 않고,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말하며 굳어집니다. 물론 경계를 세우면 죄책감이 따라옵니다. 특히 효, 희생, 참음이 미덕으로 여겨진 환경에서 자란 분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죄책감은 ‘내가 나를 보호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문을 잠그는 사람에게는 처음엔 어색함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경계를 세운 뒤 마음이 흔들릴 때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 편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가 지키려는 건 예의일까요, 아니면 내 존엄일까요?” 질문의 방향이 바뀌면, 경계가 점점 더 자연스러워집니다.

대화: 이해받기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말하기

대화는 종종 ‘사랑의 형태’라고 말하지만, 가족 대화는 때때로 ‘검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성적표를 내밀어야 하고, 결과로 평가받고, 변명은 감점 요인이 되는 것 같은 분위기요. 이런 자리에서 “저를 이해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상대가 이해를 선택하지 않는 순간 다시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화의 목표를 바꿨습니다. 이해를 얻는 것보다, 대화 속에서 제 자존이 깎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 이 목표가 생기니 말의 톤과 길이도 달라졌습니다. 제가 그 전환을 경험한 장면이 있습니다. 친척 모임에서 누군가 제 직업을 묻고, 부모님이 대신 대답하는데 묘하게 ‘설명하는 말투’가 섞여 있었습니다. “아직 자리를 못 잡아서…” 같은 표현이었지요. 그 순간 웃으며 넘길 수도 있었지만, 저는 아주 조용히 말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 제 방식으로 경력을 쌓고 있어요. ‘아직 못 잡았다’는 말은 제가 듣기에 조금 무겁네요.” 분위기가 잠깐 얼어붙었지만, 신기하게도 그 뒤로는 질문이 줄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관계를 깨지 않으면서도, 관계의 규칙을 바꿀 수 있구나 하고요. 대화에서 도움이 되었던 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짧은 문장으로 핵심만 말하기입니다. 가족 대화는 길어질수록 ‘심판’이 등장하기 쉽습니다. 둘째, 시간을 정해두기입니다. “10분만 이야기하고 마치겠습니다”처럼요. 시간제한은 감정이 과열될 때 브레이크가 되어줍니다. 셋째, 대화의 형태를 바꾸기입니다. 말로 부딪치면 매번 같은 싸움이 반복된다면, 문자나 메모처럼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방식이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저는 한동안 중요한 이야기는 문자로 먼저 정리해 보냈습니다. 그렇게 하면 상대도 즉흥적으로 공격하기가 어렵고, 저도 흔들리지 않는 문장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꼭 기억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대화는 상대를 ‘교정’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특히 꼬리표를 오래 붙여온 사람은, 그 꼬리표가 자신의 불안과 기대를 붙잡아주는 지팡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는 더디거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대화의 성과를 “상대가 바뀌었다”로만 평가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는 이전보다 덜 다쳤다” “나는 내 말을 더 분명히 했다” 같은 기준이 쌓이면, 그 자체가 관계의 방향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성장: 꼬리표가 아닌 ‘나의 문장’으로 하루를 적립하기

성장은 멀리 있는 결승선이 아니라, 매일의 언어가 쌓인 결과에 가깝습니다. 꼬리표가 무서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 번의 상처가 아니라, 비슷한 표현이 반복되며 내 안에 ‘내 소개글’처럼 자리 잡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장을 “더 대단해지는 일”이 아니라 “내 소개글을 새로 쓰는 일”이라고 정의해 보았습니다. 제가 실제로 했던 연습 중 하나는 ‘하루의 증거 수집’이었습니다. 어느 날, 부모님과 통화한 뒤 마음이 가라앉아 “나는 역시 부족해”라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그때 저는 노트에 딱 세 줄만 적었습니다. 오늘 한 일, 오늘 버틴 것, 오늘 배운 것. 놀랍게도 세 줄은 늘 채워졌습니다. 면접을 망쳤던 날에도 “일찍 일어나 준비했다” “끝까지 질문을 들었다” “내가 약한 부분을 알았다”는 문장이 나왔습니다. 큰 성공담은 아니지만, 그 문장들이 쌓이자 ‘부족함=무가치’라는 등식이 조금씩 깨졌습니다. 성장을 돕는 또 다른 방법은 ‘관계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가족이 내 세계의 80%를 차지하면, 한마디에 하루가 휘청입니다. 반대로 가족이 30% 정도가 되면, 그 한마디는 아프더라도 전부가 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가족 밖의 시간을 늘렸습니다. 운동 모임에 나가고, 관심 있는 공부를 함께하는 사람을 찾고, 가끔은 상담을 통해 제 감정의 뿌리를 정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건 이것입니다. 지지는 특별한 말이 아니라, 나를 한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에서 온다는 것. 그런 태도를 경험할수록, 내 안에서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장에는 ‘내가 나에게 허락하는 속도’가 필요합니다. 어떤 날은 단단해졌다가도, 어떤 날은 예전 말 한마디에 다시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흔들렸다는 건, 여전히 중요하게 살고 있다는 뜻이야.” 흔들림을 실패로 해석하지 않으면, 다시 일어나는 시간이 빨라집니다. 꼬리표를 떼는 성장은 단숨에 끝나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나의 문장을 하루씩 적립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꼬리표가 ‘남이 붙인 낡은 스티커’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자녀”라는 말은 한 사람의 삶을 설명하기엔 너무 거칠고 단순합니다. 그 말이 오래 남아 아픈 이유는, 결국 내가 나를 보는 시선까지 오염시키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회복은 경계로 마음의 안전을 확보하고, 대화에서 망가지지 않는 규칙을 만들고, 성장의 언어를 매일 쌓아가는 흐름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늘은 하나만 정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표현이 나오면 대화를 멈추겠습니다”라는 문장, 혹은 “나는 오늘도 내 방식으로 한 걸음 갔다”라는 문장. 작은 문장이 쌓이면, 자기 관계는 다시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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