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회의나 팀 대화를 진행하다 보면 항상 같은 자리만 맴도는 느낌을 받는 분들을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특히 “많이 이야기했는데 정작 남는 건 없다”는 허탈함을 자주 느끼는 팀장, 실무자, 진행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논의가 겉돌기 시작했을 때 어떻게 흐름을 되잡고, 결국 모두가 수긍하는 결론과 실행 계획까지 이끌어낼 것인지, 정리–선택–액션아이템이라는 세 가지 단계로 구체적인 합의 도출 프레임워크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1. 회의가 겉돌 때, 먼저 해야 할 일은 ‘정리’
논의가 옆길로 새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보통 “이제 결론 좀 냅시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이 나온 시점에서는 이미 너무 많은 말이 쌓여 있고, 누가 무엇을 주장했는지조차 흐릿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결론을 재촉하기보다, 한 박자 멈춰 서서 흐트러진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이 훨씬 먼저입니다. 정리의 목적은 새로운 의견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온 이야기를 다시 보기 좋은 형태로 묶어 주는 데 있습니다. 말하자면 어지럽게 흩어진 포스트잇을 같은 색깔끼리 붙여 보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정리 단계에서 가장 효과적인 시작 멘트는 간단합니다. “잠깐만요,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을 한 번만 정리해 볼게요.” 이 한 문장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현재 흐름으로 돌아옵니다. 이어서 지금까지 나온 의견을 최대한 요약해서 말합니다. 이때 포인트는 말한 사람의 이름이나 디테일한 표현보다, 그 말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중심으로 묶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보면, 첫째는 일정 우려, 둘째는 품질 확보, 셋째는 예산 문제가 핵심인 것 같습니다”와 같이 큰 덩어리로 정리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주제를 3개 안팎으로 나누어 보여주면, 사람들은 금세 “아, 우리가 이 정도를 이야기하고 있었구나” 하고 현재 위치를 인식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정리를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슬쩍 섞지 않는 것입니다. 진행자의 관점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상대는 “이건 저 사람 해석이지, 우리 이야기와는 좀 다르다”라고 느끼게 되고, 정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집니다. 따라서 “지금 말하는 건 제 의견이 아니라, 모두가 말씀해 주신 내용을 한 번 묶어 본 것입니다. 혹시 빠진 부분이나 다르게 들린 부분이 있으면 꼭 말해 주세요”라는 전제를 먼저 깔아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렇게 전제한 뒤 “제가 이해한 바로는, 우리는 A를 두고 논의 중이고, 선택지는 대략 이 정도, 그리고 걱정하는 포인트는 이 세 가지 맞을까요?”처럼 질문형으로 마무리하면 참여자들이 수정을 도와주면서 정리가 더욱 탄탄해집니다. 정리는 단순히 “요약”하는 작업이 아니라, 논의의 좌표를 다시 찍어 주는 행동입니다. 목적지 없이 걷다 보면 어디쯤 와 있는지 감이 사라지듯, 회의도 목적과 현재 위치가 흐릿해지는 순간부터 겉돌기 시작합니다. 이때 “우리가 무엇을 위해 말하고 있는지, 지금까지 어떤 지점까지 왔는지”를 되짚어 주는 정리 발언 하나만으로도, 논의는 다시 중심을 찾게 됩니다. 결론을 잘 내는 회의는 대부분 정리를 자주 하는 회의입니다. 반대로 정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회의는, 길게 이야기해도 참여자 각자가 다른 장면을 떠올린 채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논의가 산으로 가는 것을 막고 싶다면, 먼저 정리의 빈도를 의식적으로 늘려 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습니다.
2. 의견이 갈릴수록 더 중요한 ‘선택’의 기준 세우기
정리를 통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한 화면에 올려놓았다면, 그다음 단계는 자연스럽게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많은 진행자가 이 시점에서 바로 “A로 할까요, B로 할까요?”라고 묻지만, 이 질문은 대개 또 다른 논쟁의 출발점이 됩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지지하던 안을 다시 한번 강하게 주장하고 싶어지고, 회의는 또다시 여러 갈래로 퍼져 나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선택’ 단계에서 먼저 다뤄야 할 것은 안건 자체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입니다. 방향을 정하기 전에 나침반의 눈금을 같은 곳에 맞추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워집니다. 기준을 세울 때는 막연하게 “중요한 게 뭘까요?”라고 묻기보다, 구체적인 후보를 제시해 주는 편이 논의를 돕습니다. 예를 들어 출시 시점을 정하는 회의라면 “우리가 이번에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건 속도일까요, 안정성일까요, 아니면 비용 절감일까요?”처럼 세 가지 정도의 키워드를 던져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오늘은 무엇을 1순위로 두는 게 좋을지 이야기해 보죠”라고 제안합니다. 사람들은 안건에 대한 찬반을 말할 때보다, 기준을 고르는 단계에서 더 차분하게 논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준에 대한 합의가 어느 정도 모이면, 이후 안건 선택은 훨씬 수월해집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완벽한 기준”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작동 가능한 기준”을 정한다는 마음가짐입니다. 현실의 결정은 늘 여러 요소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고, 어떤 기준도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행자는 “오늘 이 회의 시간 안에 우리가 합의할 수 있는 기준 수준에서 결정해 봅시다. 나중에 상황이 크게 달라지면 그때 다시 기준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덧붙여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말해주면, 사람들도 한 번의 결정에 과도한 부담을 느끼지 않고 현재 최선의 선택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기준 합의가 끝났다면, 이제 비로소 각 안을 기준에 비추어 평가하는 단계에 들어갑니다. 여기서도 표현이 중요합니다. “그럼 A랑 B 중에 뭐가 더 좋을까요?”가 아니라, “우리가 방금 정한 기준이 ‘리스크 최소화’라면, A와 B 중 어느 쪽이 그 기준에 더 부합한다고 보시나요?”처럼 기준을 문장 속에 다시 끌어와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참여자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안을 방어하기보다, 함께 정한 기준에 맞춰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선택 단계의 마무리에서도 ‘합의의 수준’을 열린 상태로 두는 것이 좋습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이 100% 만족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 방향으로 진행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겠습니다”처럼 표현해 보면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반대 의견이 남아 있을 때는 “지금 방향에서 특히 걱정되는 포인트를 한두 가지만 짧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 범위를 줄여 줍니다. 이렇게 하면 반대 의견도 논의를 흔드는 요소가 아니라, 선택된 방향을 보완하는 참고 정보로 자리 잡게 됩니다. 결국 선택 단계의 핵심은 ‘무엇을 택했나’보다 ‘어떤 기준으로 택했나’를 함께 기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이 기억이 있어야 나중에 결정이 흔들릴 때도 “그때 우리는 이런 이유로 이 선택을 했다”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3. 결론을 행동으로 연결하는 ‘액션아이템’ 설계법
정리와 선택까지 잘 끝냈는데도 회의가 끝난 뒤 남는 것이 없다면, 대부분은 마지막 고리인 ‘액션아이템’에서 끊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말로 합의한 결론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려면, 구체적인 다음 단계가 반드시 문장으로 명시되어야 합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죠”라는 말 한마디로 끝난 회의는, 시간이 지나면 “그때 우리 뭐라고 했지?”라는 말로 되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액션아이템 단계의 역할은 결론을 문장 하나 더 덧붙여 실천 가능한 약속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액션아이템을 만들 때는 네 가지 요소를 빠뜨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어느 정도 수준까지 할 것인가. 예를 들어 “신규 기능 A는 B님이 담당해서, 2주 안에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어 팀에 공유한다” 정도면 꽤 구체적인 편에 속합니다. 반대로 “고객 조사 진행”처럼 두루뭉술한 표현은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기존 고객 10명을 선정해서, 다음 주 금요일까지 인터뷰 일정만 먼저 잡는다”처럼 가능한 한 작고 선명한 단위로 쪼개는 것이 좋습니다. 행동 단위로 나누어져 있어야, 누군가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의 입장에서 가장 실용적인 습관은 회의 말미에 “액션아이템만 정리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회의 종료 5분 전에는 논의를 멈추고, 오늘 나온 액션아이템만 정리해 보겠습니다”라고 미리 선언해 두는 방식입니다. 그다음 “제가 들은 바로는, 오늘 회의에서 정해진 다음 단계는 이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라며 구체적인 문장으로 읽어 줍니다. 그리고 “이대로 기록해도 괜찮을까요, 수정하거나 추가하고 싶은 부분 있으세요?”라고 되물어 최종 확인을 받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참여자들은 오늘 회의에서 본인이 맡게 된 역할을 명확히 인식하게 되고, 회의가 끝난 뒤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헷갈리지 않게 됩니다. 또한 액션아이템을 너무 많이 만드는 것은 오히려 실행력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 회의에서 10개의 과제를 쏟아내면 아무것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3개 이내로 줄이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 세 가지만 제대로 실행돼도 오늘 회의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라고 느껴지는 수준으로 압축해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선순위를 매기는 과정 자체가 팀의 초점을 다시 모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액션아이템은 기록으로 남겨야 비로소 힘을 갖습니다. 화이트보드, 메신저, 협업 툴 등 무엇이든 상관없지만, 회의 직후 바로 정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진행자는 “방금 합의한 액션아이템은 제가 오늘 안에 정리해서 공유드리겠습니다. 혹시 빠진 내용이 있으면 댓글로 꼭 남겨 주세요”라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회의에서 나온 결정이 말로만 머무르지 않고, 팀의 공식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결국 액션아이템 단계는 “합의된 결론을 누가 언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구체적인 언어로 고정하는 일이며, 이 고리가 튼튼할수록 회의는 ‘좋은 대화’에서 ‘실제 변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논의가 겉돌 때 회의를 바꾸는 방법은 사람들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데서 출발합니다. 정리 단계에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시 한 화면에 올리고, 선택 단계에서 기준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 둔 뒤, 액션아이템 단계에서 구체적인 다음 행동을 문장으로 박아 두면 회의의 밀도가 달라집니다. 이 글에서 소개한 정리–선택–액션아이템 프레임워크를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는, 팀의 문화와 상황에 맞게 조금씩 조정해 보시길 권합니다. 우선은 다음 회의에서 “마지막 5분은 오늘 결정과 액션아이템만 정리한다”는 원칙 하나만 실험해 보세요. 몇 번 반복해 보면, 팀의 대화가 결과 중심으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