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막 외주를 시작했거나, 몇 번의 프로젝트에서 “왜 항상 내가 끌려가지?”라는 감정을 느낀 프리랜서분들이 계실 겁니다. 목표는 단순히 분쟁을 피하는 요령이 아니라, 처음부터 관계의 균형을 세팅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 있습니다. 계약은 ‘말의 울타리’를 세우는 일이고, 요청관리는 ‘흐름을 정리하는 습관’이며, 단가는 ‘내 일을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습니다. 세 가지를 함께 다듬으면 갑을 구도는 생각보다 조용히 사라집니다.
계약: ‘좋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구조’로 시작하기
초보 때는 흔히 “저는 유연하게 해 드릴게요”라는 말로 신뢰를 얻으려 합니다. 그런데 유연함은 종종 빈틈으로 읽히고, 빈틈은 습관적으로 넓어집니다. 그래서 계약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상대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기대하는 장면을 같은 그림으로 맞추는 것입니다. 저는 이걸 ‘프로젝트 지도 그리기’라고 부릅니다. 지도에는 세 가지가 꼭 들어갑니다. 첫째, 무엇을 만들어 드리는지(산출물 목록). 둘째, 어디까지 책임지는지(포함/미포함). 셋째, 언제 어떤 상태를 ‘완료’로 볼지(완료 기준).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길고 딱딱한 문장이 아니라, 오해가 생길 만한 지점을 미리 짚어주는 문장들입니다. 예를 들어 “최종본은 A형식으로 납품합니다”, “검수는 납품 후 7일 이내에 진행합니다”, “검수 기간 내 회신이 없으면 승인으로 간주합니다”처럼요. 이 정도만 있어도 ‘끝나지 않는 프로젝트’가 되는 가능성이 크게 줄어듭니다. 제가 처음 겪은 실패는 계약이 없는 게 아니라, 완료의 기준이 없는 계약이었습니다. 몇 년 전, 간단한 랜딩페이지 문구 작업을 맡았는데요. 저는 “수정은 충분히 해드리겠다”는 말을 친절이라고 믿었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문구 톤이 매주 바뀌었고, 그때마다 “방향이 살짝 바뀌었을 뿐”이라는 말이 따라왔습니다. 일을 마무리할 타이밍이 사라지더군요. 그 뒤로 저는 계약서 앞장에 ‘완료의 정의’ 한 문장을 꼭 넣습니다. “클라이언트가 사전에 승인한 기준(톤, 길이, 구성)에 부합하고, 오탈자 수정까지 반영되면 완료입니다.” 이 문장이 저를 구해줬습니다. 관계가 딱딱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로 편해집니다. 끝이 보이니까요. 또 하나, 초보일수록 ‘연락 규칙’을 계약처럼 다뤄보셔야 합니다. 언제까지 답을 드리는지, 피드백은 어떤 채널로 받는지, 결정권자는 누구인지. 이건 예의가 아니라 운영입니다. 프로젝트는 감정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규칙으로 굴러갑니다. 규칙이 있으면 “왜 답이 늦어요?” 같은 불필요한 긴장 대신 “우리가 합의한 방식대로 가겠습니다”라는 안정감이 생깁니다.
요청관리: 추가요청을 ‘거절’이 아니라 ‘정리’로 바꾸기
갑을 구도는 대개 요청이 폭주하는 순간 만들어집니다. 특히 상대가 악의가 없어도, ‘생각난 김에 던지는 부탁’이 계속 쌓이면 어느새 프로젝트가 다른 얼굴이 됩니다. 그래서 요청관리는 말싸움 기술이 아니라, 교통정리 능력에 가깝습니다. 저는 외주를 “여러 갈래로 뻗는 길을 하나의 차선으로 모으는 일”에 비유합니다. 차선이 없으면 서로 사고가 나고, 차선이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제가 추천하는 방식은 간단합니다. 요청을 받는 순간 바로 처리하지 말고, 먼저 ‘요청의 형태’를 바꿔서 받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거 좀 더 고급스럽게요” 같은 말이 오면, 곧장 작업에 들어가지 않고 질문을 던집니다. “고급스럽다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실까요? 참고 이미지가 있으실까요? 우선순위는 톤/색/구성 중 무엇일까요?” 이렇게 질문을 세 개만 던져도 요청은 추상에서 구체로 내려옵니다. 추상은 끝이 없지만, 구체는 끝이 있습니다. 저도 예전엔 밤 11시에 오는 메시지를 ‘열심히’의 증거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느 프로젝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클라이언트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시지를 보내셨고, 저는 그때마다 바로 반응했습니다. 며칠은 괜찮았지만 한 달이 지나니 제 생활이 무너졌습니다. 결국 납기 직전에 제가 지쳐서 실수가 늘었고, 그 실수로 다시 수정이 생기니 악순환이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빠른 답이 친절이 아니라, 반복되는 불안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는 걸요. 이후 저는 ‘업무 리듬’을 문서로 공유합니다. “요청은 한 문서로 모아 주시고, 저는 매일 오후 4시에 한 번 묶어서 회신드립니다.” 이렇게 정하니 놀랍게도 상대도 더 편해하셨습니다. 즉흥 요청이 줄고, 결정이 빨라졌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주도권을 되찾았습니다. 갑을 구도를 줄이는 건 상대를 이기는 게 아니라, 일을 굴리는 방식을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팁은 ‘변경요청의 문장’을 미리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해당 요청은 기존 범위를 넘어서는 변경으로 보입니다. 일정과 비용에 영향이 있어 2가지 옵션으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장입니다. 이 한 문장이 있으면 감정의 대립 대신 선택의 대화로 넘어갑니다. 요청을 통제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보호한다는 느낌으로 말씀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단가: 숫자를 방어하지 말고, ‘구성’을 설계하기
단가 협상에서 초보 프리랜서가 흔들리는 순간은, 상대가 “예산이 이 정도인데 맞춰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을 때입니다. 그 질문은 사실 가격을 깎자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인지 보고 싶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이때 숫자를 지키려다 보면 말이 뻣뻣해지고, 반대로 숫자를 내주다 보면 마음이 꺾입니다. 그래서 저는 단가를 ‘숫자’가 아니라 ‘구성’으로 제시하는 쪽을 택합니다. 구성으로 말하면 협상은 할인 싸움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됩니다. 제가 실제로 써먹었던 방식이 하나 있습니다. 한 번은 브랜딩 작업 제안을 받았는데, 첫 미팅에서 상대가 바로 “다른 곳은 더 싸던데요”라고 말하셨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기분이 상했을 텐데, 그때는 준비해 둔 ‘세 가지 패키지’를 꺼냈습니다. 기본형은 핵심 산출물만, 표준형은 리서치와 가이드까지, 확장형은 운영 템플릿과 1개월 피드백까지.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예산을 맞추실 수는 있습니다. 다만 예산을 낮추면 결과를 지키기 위해 범위를 조정해야 합니다. 어떤 결과를 가장 중요하게 보실까요?” 그 순간 대화의 중심이 가격에서 목표로 옮겨갔습니다. 결국 표준형으로 계약이 성사됐고, 무엇보다 상대가 저를 ‘협상에서 밀리는 사람’이 아니라 ‘설계하는 사람’으로 보더군요. 갑을 구도는 이런 작은 순간에서 갈립니다. 단가를 설계할 때는 ‘최저선’을 먼저 정하셔야 합니다. 남에게 말하는 최저선이 아니라, 내가 지키지 못하면 프로젝트 내내 후회할 최저선입니다. 작업 시간, 준비 비용, 커뮤니케이션 비용까지 넣어서요. 그리고 견적서에는 꼭 “가격이 아니라 범위가 움직인다”는 구조를 담으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수정 2회 포함, 추가 수정은 회당 비용”처럼 규칙을 넣으면, 단가가 협상되는 게 아니라 업무량이 조절됩니다. 또한 결제 조건도 단가의 일부입니다. 돈이 늦게 들어오면 그 프로젝트는 결국 당신의 시간을 무단 점유하게 됩니다. 그러니 결제 일정이 늦어질 때의 처리(작업 중단, 일정 재조정)를 ‘부드럽게’가 아니라 ‘명확하게’ 적어두는 편이 장기적으로 관계를 더 좋게 만듭니다.
갑을 구도를 줄이는 방법은 의외로 거창하지 않습니다. 계약에서는 완료의 기준과 연락의 규칙을 먼저 세워 ‘끝이 있는 일’로 만들고, 요청관리에서는 즉흥 부탁을 문서와 리듬으로 모아 ‘흐름이 있는 일’로 바꾸며, 단가에서는 숫자를 방어하기보다 패키지와 옵션을 설계해 ‘선택이 가능한 일’로 만드시면 됩니다.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실천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다음 미팅 후 5줄 요약을 남기기. 둘째, 견적서에 포함/미포함을 한 줄이라도 적기. 이 두 줄이 관계의 무게중심을 바꿔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