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팀에서 “왜 나만 더 뛰는 것 같지?”라는 감정이 자주 올라오는 직장인, 특히 협업이 많은 프로젝트 환경에 계신 분들을 위해 작성했습니다. 목표는 단순히 속을 풀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공정한 기준을 세우는 방법을 드리는 데 있습니다. 평가와 비난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지만, 데이터는 문제를 책상 위로 올려놓습니다. 오늘부터 바로 써먹을 수 있도록 ‘업무량-기여-조율’ 순서로 대화의 뼈대를 잡아드리겠습니다.
업무량: ‘많다’는 말 대신 무게를 재는 법
“일이 많아요”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설득력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들 바쁜데?”로 들리기 쉽고,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 서운해지지요. 그래서 저는 업무량을 말할 때 ‘양’이 아니라 ‘무게’로 바꾸어 설명합니다. 무게를 만드는 요소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첫째, 해야 하는 일이 어디까지인지(경계). 둘째, 실제로 손이 묶이는 시간(집중을 깨는 요소 포함). 셋째, 실수했을 때의 리스크와 판단의 빈도(정신적 부담). 이 세 가지를 적어두면 “많다”가 “구체”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숫자를 크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서로가 같은 저울을 쓰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료 만들었어요” 대신 “초안 작성, 피드백 반영 2회, 회의 정리, 최종 버전 배포까지”처럼 단계로 쪼개면, 자연스럽게 업무의 크기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시간을 말할 때는 ‘순수 작업 시간’만 적지 마시고, 중간에 끼어드는 확인 요청, 급한 메시지, 갑작스러운 회의 같은 ‘깨진 시간’을 따로 표시해 보세요. 체감 피로는 대개 그 틈에서 커지니까요. 예전에 제가 서비스 론칭 문서를 맡았던 때가 있습니다. 문서 자체는 이틀이면 끝낼 분량이었는데, 이상하게 일주일 내내 야근을 하게 되더군요. 억울한 마음이 올라와서 그 주에 만큼은 시간을 기록해 봤습니다.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문서 작성은 9시간이었고, 문서와 관련된 “확인해 주세요” 메시지 대응이 6시간, 회의가 5시간, 갑작스러운 수정 요청이 4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기록을 들고 “제가 문서를 못 써서 늦어진 게 아니라, 중간 조율이 너무 촘촘해서 집중 시간이 계속 끊겼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순간부터 대화는 ‘누가 더 힘드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집중 시간을 지키냐’로 이동했습니다. 업무량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보여야 해결이 시작됩니다.
기여: ‘열심히’가 아니라 ‘어떤 변화’를 남겼는지
업무량을 정리했는데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는 대개 “내 기여가 보이지 않는다”는 신호입니다. 팀에서는 종종 화려한 산출물만 주목받고, 조용히 리스크를 막거나 품질을 지키는 일은 공기처럼 지나갑니다. 그래서 기여를 말할 때는 ‘결과물’만 나열하지 않고, ‘변화’를 붙여야 합니다. 저는 보통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무엇을 만들었는지(산출), 그 과정에서 어떤 기준을 지켰는지(품질), 그래서 팀이나 고객이 무엇을 덜 고생하게 되었는지(영향). 특히 영향은 거창한 KPI가 아니어도 됩니다. 예를 들어 “오탈자 줄였다”가 아니라 “오탈자로 들어오던 고객 문의가 줄어들었다”, “정리했다”가 아니라 “다음 사람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 않게 됐다”처럼, 누군가의 시간을 구해낸 흔적을 남기면 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비교의 칼로 쓰면 바로 갈등이 됩니다. 상대를 낮추는 문장이 아니라, 팀이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공유 자료”로 내놓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저는 한 번 회고 미팅에서 꽤 속상했던 적이 있습니다. 같은 기간에 저는 장애 가능성을 막느라 로그를 정리하고 알림을 손봤는데, 회의에서는 디자인 수정 건만 크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억울함을 토로했다면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겠지요. 대신 저는 다음 주에 1페이지짜리 메모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주 제가 한 일 3가지”라는 제목 아래, 1) 알림 조건 정비(오탈 12건 감소), 2) 재현 시나리오 문서화(야간 대응 시간 단축), 3) 체크리스트 도입(릴리즈 전 확인 누락 0건)처럼 정리했습니다. 놀랍게도 팀원들이 “그거 덕분에 밤에 덜 깨웠다”라고 반응하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기여는 주장하면 싸움이 되지만, 기록하면 공기가 바뀝니다. 보이는 기여를 만드는 건 인정욕구를 넘어, 팀의 기억을 정확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조율: 데이터를 ‘규칙’으로 바꾸면 갈등이 줄어듭니다
업무량과 기여를 정리했다면, 이제 남은 건 조율입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자료까지 만들었는데도 변하는 게 없다”라고 느끼십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데이터가 ‘공감’까지는 만들지만, ‘규칙’이 되지 않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조율의 핵심은 역할의 끝을 분명히 하고, 요청의 통로를 정리하고, 합의를 문장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역할은 직함이 아니라 책임의 종착역으로 정의하는 게 좋습니다. “기획 담당”이 아니라 “초안 작성까지, 리뷰 반영은 1회, 이후 변경은 재협의”처럼요. 다음으로 요청 통로를 정리합니다. 급한 요청이 늘 같은 사람에게 떨어지는 팀은, 대부분 ‘긴급’의 정의가 없습니다. “오늘 안에”가 긴급인지, “고객 이슈”만 긴급인지, 기준을 적어두면 감정싸움이 줄어듭니다. 마지막으로 합의는 짧게라도 남겨야 합니다. 회의가 끝난 뒤 5줄로 “무엇/누가/언제/어디까지/우선순위”를 기록해 공유하면, 기억의 싸움이 사라집니다. 저는 한때 ‘도와주는 사람’ 이미지가 굳어져서, 회의가 끝나면 항상 제게 추가 일이 붙었습니다. 처음엔 “제가 빠르니까”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숨이 막히더군요. 그래서 한 번은 용기를 내서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최근 2주 동안 추가 요청이 7건이었고, 그중 5건이 회의 직후에 생겼습니다. 이 패턴이 반복되면 제 원래 업무 마감이 흔들립니다.” 그리고 해결책을 요구가 아니라 선택지로 제시했습니다. “A안은 회의에서 요청을 확정하고, 회의 후 요청은 다음 회차로 넘깁니다. B안은 요청이 생기면 담당을 돌아가며 배정합니다.” 그날 바로 모든 게 바뀐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팀이 ‘추가 요청은 공짜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같은 언어로 보게 됐고, 저는 그 이후로 회의가 끝나기 전에 “이건 누가 맡나요?”를 자연스럽게 묻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조율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규칙을 만드는 기술입니다.
“나만 노력하는 느낌”은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일이 쌓이고, 기준이 흐릿할 때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다만 그 감정을 그대로 들고 가면 대화는 평가로 흐르고, 관계는 금이 가기 쉽습니다. 오늘부터는 업무의 무게를 쪼개 기록하고, 기여를 ‘변화’로 남기고, 그 데이터를 팀의 규칙으로 바꾸어 보세요. 그렇게 하면 같은 상황에서도 “누가 더 했냐”가 아니라 “어떤 구조를 고치면 되냐”로 대화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