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학부모 모임에서 정치 이야기나 은근한 서열 경쟁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분들을 위해 작성했습니다. 목적은 단순합니다. 아이를 위한 최소한의 협력은 유지하되, 불필요한 감정 소모와 관계의 빚을 만들지 않는 것. 학부모 모임은 겉으로는 친목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정보·평판·영향력이 동시에 오가는 작은 ‘생활 공동체’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마음만 좋다고 버티기 어렵고, 반대로 선을 너무 날카롭게 그어도 금방 어색해지지요. 이 글에서는 제가 여러 부모님들의 이야기에서 공통으로 드러난 장면들을 바탕으로, ‘말려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 실제로 어떤 선택을 하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거리 두기는 관계를 끊는 기술이 아니라 내 에너지를 배치하는 기술입니다. 둘째, 대화는 논리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와 방향을 바꾸는 감각입니다. 셋째, 경계는 단호함이 아니라 일관성으로 완성됩니다. 이 세 축을 잡아두면 모임이 갑자기 뜨거워져도, 내 일상은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거리두기: ‘안 보이게 멀어지는’ 참여 설계로 라인에서 빠져나오기
학부모 모임에서 말려 들어가는 순간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누군가의 부탁을 한 번 들어줬고, 다음엔 “그럼 이번에도 같이 해주실 거죠?”라는 기대가 붙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그쪽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하지요. 이때 필요한 거리 두기는 차갑게 등을 돌리는 방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생활적이고, 더 조용한 방식이 오래갑니다. 저는 이것을 ‘참여 설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내 시간표와 기분이 아니라, 구조를 먼저 만들어두는 겁니다. 예컨대 모임 참석을 “아이 행사 관련 일정은 가능, 순수 친목은 분기 1회”처럼 정해두면, 누가 불쑥 불러도 기준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거리 두기를 잘하는 분들은 공통적으로 “한 그룹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특정 무리에 고정석처럼 붙어 있으면, 그 무리의 감정선이 내 감정선이 됩니다. 반대로 행사 때마다 인사하는 사람을 조금씩 바꾸고, 대화도 한 사람에게 길게 붙지 않고 여러 갈래로 흘려보내면, 자연스럽게 ‘중간 지점’에 서게 됩니다. 마치 물가에 발만 담그고 수온을 보는 것처럼요. 깊은 물로 들어가야만 친해지는 게 아니라, 적당한 거리에서 반갑게 인사하는 것도 충분히 관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거리 두기는 “거절”이 아니라 “기본값”을 바꾸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누군가 제안을 했을 때 매번 거절하면 상대는 상처를 받기 쉽습니다. 하지만 내 기본값이 애초에 ‘조용한 참여’라면, 거절이라는 말 자체가 필요 없어집니다. “저는 보통 공지는 확인만 하고, 준비는 가능한 부분만 돕는 편이에요”처럼 평소의 스타일로 말해두는 것이 훨씬 부드럽습니다. 한 번은 ‘간식 담당’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대화방에서 돌았는데, 어떤 분이 이렇게 답을 하셨습니다. “저는 집에 알레르기 아이가 있어서 식품은 늘 조심해요. 대신 물품 구매 영수증 정리나 비용 정산은 도와드릴게요.” 신기하게도 그 뒤로 그분은 계속 ‘일을 맡기는 대상’이 아니라, ‘필요할 때 협력하는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포인트는 분명합니다. 거절만 한 게 아니라, 본인이 편한 역할을 제시해 모임의 기대치를 재설정한 겁니다. 거리 두기는 결국 내 역할을 스스로 정하는 일입니다. 모임에서 ‘사람’이 아니라 ‘역할’로 보이기 시작하면 정치가 붙습니다. 그러니 반대로, 내가 선택한 역할로만 보이게 만들면 정치가 붙을 여지가 줄어듭니다. 이 작은 설계가 서열 게임의 문턱을 낮춰주고, 마음의 체력을 지켜줍니다.
대화: 불꽃이 번지기 전에 ‘온도’를 낮추는 말의 선택
정치·서열이 가장 빨리 번지는 장소는 대화입니다. 누군가 특정 사람을 두고 미묘하게 평가하기 시작하면, 그 대화는 금세 편을 나누는 게임이 됩니다. 이때 많은 분이 두 가지 극단으로 흔들립니다. 하나는 “맞서서 바로잡아야지”라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맞장구치고 넘어가자”는 선택입니다. 그런데 둘 다 오래 가면 피로가 큽니다. 맞서면 내가 문제를 만든 사람이 되고, 맞장구치면 내가 그 구조의 일부가 되어버리니까요. 실전에서는 ‘정답 말하기’보다 ‘온도 조절’이 먼저입니다. 대화가 뜨거워졌다는 건, 사실관계보다 감정이 앞서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화의 첫 목표를 “정리하고 낮추기”로 잡는 편이 안전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그 집은 원래 좀 그래”처럼 결론을 내려버릴 때, 곧장 반박하기보다 “그렇게 느낄 만한 일이 있었나 보네요”처럼 감정을 한 번 받아주고, 이어서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부터 보면 좋겠어요”라고 사실로 내려 앉히는 겁니다. 감정의 급류를 댐으로 잠깐 막는 느낌이지요. 또 하나 유효한 기술은 ‘질문으로 흐름을 바꾸기’입니다. 정치 이야기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말로 확인받고 싶어 합니다. 이때 “맞아요/아니에요”를 던지면 갈라지고, “그래서요?”를 던지면 방향이 바뀝니다. “그럼 아이들 입장에서는 어떤 선택이 제일 덜 불편할까요?” 같은 질문은,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도움이 되느냐로 시선을 옮겨줍니다. 어떤 모임 자리에서 누군가가 특정 담임 선생님을 두고 불만을 길게 말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분이 “저도 답답하실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끼리만 이야기하면 더 답답해지더라고요. 혹시 학교에 문의할 때는 어떤 문장으로 하면 오해가 덜할까요?”라고 조용히 물었습니다.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불만이 ‘인물 평가’에서 ‘문제 해결’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는 험한 말이 줄고, 구체적인 문의 방식이 공유됐다고 합니다. 이런 대화법의 장점은 간단합니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면서, 동시에 무책임한 방관자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중립이에요”라고 선언하는 순간 오히려 정치가 붙지만,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만 정리해 볼게요”라고 말하면 자연스럽게 중심이 생깁니다. 대화는 칼이 될 수도 있고, 우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비가 쏟아질 때 칼을 들면 다치기 쉽지요. 대신 우산을 펼치듯, 대화의 온도를 낮추고 방향을 바꾸는 습관을 들이면, 그 자리에서 가장 먼저 지치는 사람이 내가 되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경계: ‘단호함’보다 ‘일관성’으로 신뢰를 쌓는 방식
학부모 모임에서 경계가 무너지는 진짜 이유는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기준이 매번 바뀌어서입니다. 어떤 날은 친절하게 답하고, 어떤 날은 피곤해서 무응답이고, 어떤 날은 감정적으로 길게 설명해 버리면, 사람들은 그 틈을 읽습니다. 그래서 경계는 “세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에서 만들어집니다. 마치 신호등이 늘 같은 규칙으로 작동하니 운전자가 안심하는 것처럼요. 먼저 대화방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대화는 속도가 빠르고, 빠른 속도는 오해를 부릅니다. 공지와 잡담이 섞이면, 누군가는 “왜 내 말엔 반응이 없지?”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저 사람은 너무 나선다”라고 평가합니다. 이때 유용한 방법은 ‘반응의 범위를 고정’하는 겁니다. 예컨대 공지에는 확인만, 질문에는 짧게, 논쟁성 주제에는 참여하지 않기. 이렇게 세 가지만 지켜도 메시지 하나하나에 감정이 붙는 일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에서는 ‘설명하지 않는 연습’이 중요합니다. 부탁을 거절할 때 길게 해명하면, 그 해명은 다음 설득의 재료가 됩니다. 반면 간단히 말하고, 같은 톤으로 반복하면 상대도 빠르게 적응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개인 일정 때문에 고정 역할은 어렵습니다. 가능한 건 그때그때 말씀드릴게요” 같은 문장은 공격적이지 않지만 분명합니다. 어떤 분이 모임에서 “이번에 같이 나서서 의견 좀 내주셔야죠”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분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렇게 답했다고 해요. “제가 앞에 서는 건 부담이 큽니다. 대신 자료를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 모두에게 같은 내용이 전달되면 좋겠어요.” 결과적으로 그분은 ‘끌려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주되 선을 지키는 사람’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핵심은 단호한 말투가 아니라, 본인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참여했다는 점입니다. 경계는 관계를 차갑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관계의 수명을 늘리는 장치입니다. 경계가 없으면 어느 순간 폭발합니다. 그리고 폭발은 대개 내가 혼자 감당합니다. 하지만 작은 규칙을 미리 세우면, 사람들은 그 규칙 안에서 나를 대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이 정도까지는 함께하지만, 그 이상은 부담스러워한다”는 예측 가능성이 생기면, 오히려 편해지는 쪽은 주변입니다. 마지막으로, 경계를 세울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감정의 문을 닫지 않는 것’입니다. 기준은 분명히 하되 말은 부드럽게, 속도는 천천히. 그렇게 하면 경계는 벽이 아니라 난간이 됩니다. 넘어지지 않게 지켜주는 난간 말입니다.
학부모 모임에서 정치·서열 구조를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지 않을 선택지는 분명히 있습니다. 참여를 설계해 무리의 중심에서 살짝 비켜서고, 대화에서는 정답 경쟁 대신 온도 조절과 문제 해결로 방향을 돌리며, 경계는 단호함이 아니라 일관성으로 만들어가시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좋은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는 압박에서 조금 내려오는 일입니다. 아이를 위해 필요한 만큼만 연결되어도 충분합니다. 오늘 저녁, 내 일정과 성향에 맞는 ‘참여 기준 3개’를 메모해 보세요. 그 기준이 앞으로 모임에서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가장 현실적인 손잡이가 되어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