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 친구 부모를 만날 때, 경제력과 교육관의 간격이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마음속 비교는 작은 가시처럼 남아 하루 종일 따끔거리지요. 이 글은 아이를 키우며 ‘남의 기준’에 자꾸 흔들리는 부모를 위해 작성되었으며, 비교의 늪에서 한 발 빠져나오는 시각과 실천을 중심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독자가 관계를 끊지 않고도 마음의 균형을 되찾고, 우리 집의 리듬을 지키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비교: ‘정보’가 아니라 ‘신호’로 읽히는 순간 다루기
비교는 대개 돈의 액수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말투, 표정, 주고받는 질문의 방향 같은 ‘신호’에서 먼저 자라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요즘은 이 정도는 해야 하더라고요”라고 말할 때, 그 문장은 사실 정보가 아니라 기준의 선언처럼 들립니다. 그러면 내 안에서는 자동으로 줄자가 펼쳐집니다. 우리 집은 어디쯤인지, 내가 부모로서 부족한지, 아이가 뒤처지는지. 하지만 잠깐만 한 걸음 물러나 보면, 그 줄자는 ‘현실의 치수’가 아니라 ‘불안의 치수’ 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비교가 올라오는 순간에는 질문을 바꿔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저 말이 내 삶에 꼭 필요한가?”가 아니라 “저 말이 내 마음을 왜 찌르지?”로요. 찌르는 이유는 종종 과거의 기억과 연결됩니다.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 놓치고 싶지 않았던 기회, 혹은 ‘좋은 부모’라는 기준을 남에게서 빌려온 습관 같은 것들입니다. 비교를 없애기보다, 비교가 올라오는 길을 파악하는 쪽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저는 한 번 모임에서 “다들 방학 특강은 몇 개 넣으세요?”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목이 마르듯 조급해졌던 장면을 떠올립니다. 머릿속이 빨라지면서 ‘우리만 안 하면 큰일’ 같은 말이 자동 재생됐지요. 그런데 집에 돌아와 가만히 적어보니, 제 조급함의 핵심은 ‘특강 개수’가 아니라 ‘뒤처진다는 공포’였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모임에서 숫자가 오갈 때마다, 속으로 한 문장을 먼저 붙입니다. “이건 정보가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이다.” 그 문장이 있으면 비교는 칼날이 아니라, 지나가는 바람처럼 얇아집니다.
경계: 친해지는 방식보다 ‘지치는 방식’을 먼저 관리하기
부모 관계에서 경계는 무례가 아니라 체력 관리에 가깝습니다. 특히 아이가 얽혀 있으면 더 그렇습니다. “불편하면 안 만나면 되지”라는 말이 현실에서 잘 안 통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다 맞춰주면, 결국 마음이 바닥나고 말지요. 그러니 경계를 세울 때는 ‘상대의 성향’보다 ‘내가 지치는 지점’을 먼저 살피는 편이 낫습니다. 내가 어디서 피로해지는지 알아야, 거기를 넘지 않는 선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경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시간의 경계’입니다. 모임 빈도를 줄이거나, 참석 시간을 짧게 잡는 방식이지요. 둘째는 ‘주제의 경계’입니다. 돈, 사교육, 이사, 투자처럼 마음을 흔드는 주제는 깊게 들어가지 않겠다고 정해두는 겁니다. 중요한 건 그 경계를 ‘설명’하려 애쓰지 않는 것입니다. 설명이 길어지면 설득이 되고, 설득은 또 평가를 부릅니다. 짧고 담담하면 됩니다. “저희는 요즘 그렇게까지는 안 해요.” “그건 아직 고민 중이에요.” 저는 한동안 단체 채팅방 알림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던 경험을 떠올립니다. 누군가의 공유가 나쁜 의도는 아니었지만, 매일 ‘비교 재료’가 배달되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아주 단순한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채팅방은 하루 두 번만 확인하고, 답장은 급한 것만. 그리고 모임도 ‘친밀한 우정’이 아니라 ‘아이를 위한 최소 연결’로 재정의했지요. 신기하게도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상대가 달라진 게 아니라 제 숨통이 트였습니다. 경계는 관계를 끊는 칼이 아니라, 관계를 오래 가져가기 위한 손잡이였습니다.
대화: 서열을 만드는 질문을 ‘생활의 언어’로 돌려놓기
같은 대화라도 어떤 질문으로 시작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어디 다녀요?” “얼마 들어요?” 같은 질문은 자칫 서열의 사다리를 세웁니다. 의도는 가벼워도, 결과는 무거워지지요. 그래서 대화에서 가장 유용한 기술은 ‘프레임 전환’입니다. 숫자와 스펙의 언어를, 생활과 컨디션의 언어로 바꾸는 방식입니다. 예컨대 “학원은 몇 개?”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숫자만 답하면 비교가 계속됩니다. 대신 “요즘 아이가 피곤해해서 줄였어요. 저희는 저녁 루틴을 먼저 잡는 중이에요”처럼 방향을 틀어보는 겁니다. 그러면 대화는 경쟁이 아니라 경험 공유로 옮겨갑니다. 또 하나는 ‘부드러운 거절’입니다. 조언이 과해질 때 정면으로 맞서면, 관계는 금세 날카로워집니다. 그럴 땐 감사와 보류를 함께 담은 문장이 안전합니다. “말씀 고마워요. 저희 상황에 맞게 천천히 고민해 볼게요.” 이 문장은 상대의 체면을 지키면서 내 선택권도 지켜줍니다. 저는 한 번 누군가가 “이 시기엔 무조건 선행해야 돼요”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던 자리에서, 예전 같았으면 말없이 움츠러들었을 장면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그날은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희는 아이가 스트레스받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더라고요. 요즘은 즐기는 페이스를 먼저 보려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말투를 낮추고, 단정 대신 ‘우리 집의 관찰’을 꺼낸 것이 포인트였지요. 그 뒤로 대화의 온도가 조금 내려갔고, 저는 그 자리에서 제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대화는 상대를 이기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내 기준을 조용히 놓아두는 방식이었습니다.
아이 친구 부모와의 차이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 차이가 곧바로 내 가치를 깎아내리지는 않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비교가 켜지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내가 지치는 지점을 기준으로 경계를 세우며, 대화를 생활의 언어로 돌려놓으면 관계는 훨씬 덜 아픕니다. 오늘 할 일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우리 집은 무엇을 지키고 싶은가”를 한 문장으로 써보세요. 그 문장이 있으면, 남의 기준이 들이닥쳐도 내 마음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